• 2023. 7. 4.

    by. 라담(라이너스의 담요)- 세계사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서로마 제국이 붕괴된 주요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때 강대국이었던 로마 제국은 내부 갈등과 경제적 쇠퇴에 직면하였고,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로마 제국의 안전을 위협하였습니다. 특히, 게르만족의 일부인 프랑크족은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로마의 마지막 군대를 격파하며 영향력을 키워나가며 유럽에서 가장 우세한 민족으로 성장했습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과 프랑크 왕국 그리고 카롤루스 대제

     

     

    게르만족의 대이동

    게르만족은 서고트족, 동고트족, 반달족, 프랑크족 등을 포함한 민족입니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서기 4세기부터 6세기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게르만족의 이동 원인은 첫째, 북부 유럽의 기후 변화 때문입니다. 게르만 족은 점점 추워지는 북유럽을 떠나 더 유리한 농업 조건을 찾아 떠났습니다. 둘째, 로마 제국이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게르만족은 로마 제국이 점점 약해지자 제국의 경계 지역으로 내려갔습니다. 셋째, 게르만족 인구의 증가 때문입니다. 게르만족은 점점 늘어나는 인구가 머물 영토를 찾아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넷째,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유목 민족인 훈족의 압박 때문입니다. 훈족은 게르만족의 터전을 위협하였고, 게르만족은 훈족과의 충돌을 피하고자 대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르만족 가운데 프랑크족은 라인강 하류 주변에서 유래한 민족입니다. 프랑크족은 유럽 대륙의 서쪽과 남쪽으로 이동하며 오늘날의 프랑스에 정착하였습니다. 프랑크족은 이동 과정에서 로마 제국의 군사, 문화, 정치 기술을 받아들이며 체제를 갖추어갔습니다. 

     

    프랑크 왕국

    프랑크 왕국은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중세 서유럽의 여러 국가에 영향을 미쳤으며, 이후 중세 유럽 역사와 깊은 관련성이 있습니다. 프랑크 왕국을 세운 왕은 클로비스 1세이며 가장 주목할 만한 업적은 가톨릭으로 개종한 것입니다. 이는 프랑크 왕국이 성장하는 기초가 되었으고, 중세 유럽 종교 문화의 토대를 형성하였습니다.

     

    클로비스 1세가 세운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은 '황궁 행정관'이라 불리는 관리들보다 권력이 약해서 훗날 황궁 행정관 출신인 피핀이 실제적으로 프랑크를 통치하기도 하였습니다. 피핀의 아들 카롤루스 마르텔은 남부 유럽을 침략한 이슬람 세력을 무찌르며 군사적으로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의 손자는 이런 업적을 발전시켜 유럽의 역사를 바꾸게 됩니다. 이 사람이 바로 프랑크 왕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카롤루스 대제입니다.

     

    카롤루스 대제

    카롤루스 대제는 뛰어난 군사적 전략 운영 능력이 뛰어난 왕이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군대와 지방의 권력을 중앙 집권화하며 프랑크 왕국을 발전시켰습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현재의 독일, 프랑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영토를 확보하였습니다.

     

    카롤루스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독일의 색슨 족과 같은 이교도들을 무찌르고, 가톨릭교가 될 것을 강요하는 등 제국 전체에 기독교를 전파하였습니다. 카롤루스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고, 교황으로부터 통치자로서의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800년 크리스마스 때, 교황 레오 3세에게으로부터 서로마 제국 황제의 왕관을 수여받았습니다. 카롤루스 대제와 교황 레오 3세와의 협력은 이슬람군의 침공을 막아내고, 서로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칼롤루스 대제가 여러 대학과 교육 기관을 세우면 교황은 이를 지원하고 지지하였습니다.

     

    카롤루스 대제는 백성을 잘 다스리고 싶어 하던 왕이었고, 그가 다스리던 수도 아헨은 풍요롭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아주 소박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카롤루스는 문맹으로 알려져 있는데, 베개 밑에 서판을 놓고 틈틈이 글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는 유럽 문물의 전통을 이어받아 라틴어와 그리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였다고도 알려졌습니다. 카롤루스 대제의 통치 시기에 문자의 형태와 발음이 표준화되는 등 문자가 발전되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카롤루스 대제 이후 프랑크 왕국은 쇠퇴하며 결국 분열되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은 서프랑크 왕국, 중프랑크 왕국, 동프랑크 왕국으로 나누게 되는데, 각각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의 기원이 되었습니다.